실패라는 단어에 짓눌리는 예술가들을 위한 매뉴얼
20대에 들어설 때 인생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였다. ‘발전’ 단어 자체가 방향성을 창조해 내고 나의 사고는 자연스레 발전과 퇴보로 결과를 해석하게끔 나뉘었다. 이는 곧 사건은 성공과 실패란 결과로 마무리되고 그로 인해 발전해야 하며 그 발전의 결과는 다시 성공과 실패를 낳는다. 이 굴레에서 성공의 횟수가 적어진다는 것은 발전에 실패했다는 사고의 도출이 나를 포함한 많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된다. 허나 이는 틀렸다. 삶과 우주의 진리엔 성공과 실패 따위는 없다 . 그러나 사회는 의미를 불어넣는다. 언제부터 시작된 악습인지 모르겠다. 농업혁명일까? 사냥 시대일까? 난 법의 통제를 받고 군대의 보호를 받는다. 난 사회인이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결과의 성취를 찾고 점검해 본다. 그 결과 창작 과정에서 순수한 재미를 추구하던 초심은 사라졌고,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더 이상 예술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렇듯 발전 추구 성향은 역설적이게 발전을 가로막는다.
나는 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과학에서 찾았다. 과학은 제국주의와 계몽의 시대 도래 이후 발전만을 추구해 왔다.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인류. 그럼, 과학자들의 삶은 어떨까? 짐작으로 미루어보아 그들은 괴로워야 한다. 성공과 발전은 극히 드문 케이스라 대부분은 실패하고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다. (AI는 2차 세계대전에서 이론이 나온 후 현대까지 발전이 더디고 무시당하던 학문이었다. 다른 수많은 분야 또한 이렇다.) 그렇기에 나는 과학자들의 삶을 엿보았다. 놀랍게도 그들은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들의 실패 가득한 삶을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들에게 발전은 기술적 성취가 아닌 데이터가 쌓이는 것을 의미하는듯했다. 그들에게 실패는 배움이고 성공은 운이다. 그들은 애초 실패와 성공이란 단어와 거리가 먼 듯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알기까지 인류 역사 22,000년이 필요했다. 22,000년간 실패했다. 22,000년간 배웠다. 운이 좋았던 사람은 눈치챈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거 같은데?” 그러나 그들은 아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알기 위해 틀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안다. 이는 22,000년간의 실패의 결과다. (물론 아직 모르는 사람도 있다)
성공한다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실패한다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실패하는 법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한다. 먼저 우리는 실수와 실패에 관대해져야 한다. 그 다음엔 좋은 실수를 하는 법에대해 알아보자 먼저 관대한 마음가짐을 갖는 데에는 좋은 방법이 있다.
실패에 관대해 지는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의 귀인적 재구성 이른바 3P 모델이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겠다. 그 모델의 해석은 이러하다.
개인화(Personalization)
이 실패는 내적 요인인가, 외적 요인인가
사람은 실패를 자신의 본질적 문제로 돌리기 쉽다. “나는 재능이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잘 실패하는 사람은 이를 구분한다. 이 실패가 정말 나의 능력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특정 조건과 상황 때문인지. 모든 실패를 내적 요인으로 귀속시키는 순간, 실패는 수정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고정된 정체성이 된다.
영속성(Permanence)
이 실패는 미래에도 계속 실패할 일인가, 나의 일시적인 실패인가
실패를 영원한 결론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다음 시도는 사라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실패는 일시적인 조건에서 발생한다. 잘 실패하는 사람은 실패를 ‘지금의 상태’로 해석하지 ‘앞으로의 운명’으로 확장하지 않는다.
보편성(Pervasiveness)
이 실패는 삶 전체의 실패인가, 단일 사건의 실패인가
하나의 실패를 전체로 일반화하는 것은 가장 빠르게 자신을 무너뜨리는 방법이다. 한 프로젝트의 실패가 곧 인생 전체의 실패가 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특정 문제를 수정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실패를 구체적인 영역으로 한정하면, 수정 가능한 단위로 쪼개진다.
마틴 셀리그만의 귀인이론은 우울과 무기력을 유발하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낙관적이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바꾸는 인지치료적 접근이다.
이로인해 실패와 실수에 대해 관대해졌다면 이후엔 잘 실수(실패)하는 법을 바라보자.
좋은 실수 하는 법
내가 좋아하는 물리학자 중에 한국에 경희대 김상욱 교수님이 계신다. 그분이 물리로 삶을 서술해 줄 때 나는 수많은 영화보다 큰 위안을 받은 경험이 많다. 다음은 그분이 제시한 좋은 실수를 하는 방법이다.
첫 번째는 실수를 숨기지 않는 것이다.
타인에게 숨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것이다. 실수를 외면하는 순간, 그 실수는 왜곡된다. 왜곡된 실수는 분석될 수 없고, 분석되지 않은 경험은 축적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반복한다.
두 번째는 실수란 걸 과정 중에 알게 되더라도 그 실수를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다.
과정 중에 실수라고 판단됐을 때 그걸 멈춰버린다면 가장 값비싼 데이터를 버리게 된다. 또 그것이 실수가 아닐지 모른다. 끝에 가서는 그 실수가 정답이었을지 모른다. 우린 실수를 끝까지 완전히 수행하고 그것을 기록하여야 한다.
결국 잘 실패하는 법이란, 실패를 제거하는 기술이 아니라 실패를 다루는 기술이다. 숨기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며,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 이 세 가지가 결합될 때 실패는 더 이상 반대편에 있는 적이 아니라, 다음 선택을 정교하게 만드는 재료가 된다.
그리고 여기서 처음으로, ‘발전’이라는 단어는 방향을 바꾼다. 더 이상 성공과 실패를 오가는 직선이 아니라, 실패를 중심으로 확장되는 구조로.
그때 비로소, 발전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된다.
강호동은 강심장을 녹화할 적에 녹화가 좋지 않았을 때 출연자 대기실에서 등을 돌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많이 배웠데이~”
많이 배웠데이 세상아~
실패라는 단어에 짓눌리는 예술가들을 위한 매뉴얼
20대에 들어설 때 인생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였다. ‘발전’ 단어 자체가 방향성을 창조해 내고 나의 사고는 자연스레 발전과 퇴보로 결과를 해석하게끔 나뉘었다. 이는 곧 사건은 성공과 실패란 결과로 마무리되고 그로 인해 발전해야 하며 그 발전의 결과는 다시 성공과 실패를 낳는다. 이 굴레에서 성공의 횟수가 적어진다는 것은 발전에 실패했다는 사고의 도출이 나를 포함한 많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된다. 허나 이는 틀렸다. 삶과 우주의 진리엔 성공과 실패 따위는 없다 . 그러나 사회는 의미를 불어넣는다. 언제부터 시작된 악습인지 모르겠다. 농업혁명일까? 사냥 시대일까? 난 법의 통제를 받고 군대의 보호를 받는다. 난 사회인이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결과의 성취를 찾고 점검해 본다. 그 결과 창작 과정에서 순수한 재미를 추구하던 초심은 사라졌고,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더 이상 예술이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해버렸다. 이렇듯 발전 추구 성향은 역설적이게 발전을 가로막는다.
나는 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과학에서 찾았다. 과학은 제국주의와 계몽의 시대 도래 이후 발전만을 추구해 왔다. 더 나은 세상,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인류. 그럼, 과학자들의 삶은 어떨까? 짐작으로 미루어보아 그들은 괴로워야 한다. 성공과 발전은 극히 드문 케이스라 대부분은 실패하고 정체되어 있기 때문이다. (AI는 2차 세계대전에서 이론이 나온 후 현대까지 발전이 더디고 무시당하던 학문이었다. 다른 수많은 분야 또한 이렇다.) 그렇기에 나는 과학자들의 삶을 엿보았다. 놀랍게도 그들은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들의 실패 가득한 삶을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들에게 발전은 기술적 성취가 아닌 데이터가 쌓이는 것을 의미하는듯했다. 그들에게 실패는 배움이고 성공은 운이다. 그들은 애초 실패와 성공이란 단어와 거리가 먼 듯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알기까지 인류 역사 22,000년이 필요했다. 22,000년간 실패했다. 22,000년간 배웠다. 운이 좋았던 사람은 눈치챈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지구가 태양을 도는 거 같은데?” 그러나 그들은 아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알기 위해 틀려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안다. 이는 22,000년간의 실패의 결과다. (물론 아직 모르는 사람도 있다)
성공한다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실패한다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실패하는 법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한다. 먼저 우리는 실수와 실패에 관대해져야 한다. 그 다음엔 좋은 실수를 하는 법에대해 알아보자 먼저 관대한 마음가짐을 갖는 데에는 좋은 방법이 있다.
실패에 관대해 지는법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의 귀인적 재구성 이른바 3P 모델이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겠다. 그 모델의 해석은 이러하다.
개인화(Personalization)
이 실패는 내적 요인인가, 외적 요인인가
사람은 실패를 자신의 본질적 문제로 돌리기 쉽다. “나는 재능이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잘 실패하는 사람은 이를 구분한다. 이 실패가 정말 나의 능력 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특정 조건과 상황 때문인지. 모든 실패를 내적 요인으로 귀속시키는 순간, 실패는 수정 가능한 문제가 아니라 고정된 정체성이 된다.
영속성(Permanence)
이 실패는 미래에도 계속 실패할 일인가, 나의 일시적인 실패인가
실패를 영원한 결론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다음 시도는 사라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실패는 일시적인 조건에서 발생한다. 잘 실패하는 사람은 실패를 ‘지금의 상태’로 해석하지 ‘앞으로의 운명’으로 확장하지 않는다.
보편성(Pervasiveness)
이 실패는 삶 전체의 실패인가, 단일 사건의 실패인가
하나의 실패를 전체로 일반화하는 것은 가장 빠르게 자신을 무너뜨리는 방법이다. 한 프로젝트의 실패가 곧 인생 전체의 실패가 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특정 문제를 수정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실패를 구체적인 영역으로 한정하면, 수정 가능한 단위로 쪼개진다.
마틴 셀리그만의 귀인이론은 우울과 무기력을 유발하는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낙관적이고 건설적인 방식으로 바꾸는 인지치료적 접근이다.
이로인해 실패와 실수에 대해 관대해졌다면 이후엔 잘 실수(실패)하는 법을 바라보자.
좋은 실수 하는 법
내가 좋아하는 물리학자 중에 한국에 경희대 김상욱 교수님이 계신다. 그분이 물리로 삶을 서술해 줄 때 나는 수많은 영화보다 큰 위안을 받은 경험이 많다. 다음은 그분이 제시한 좋은 실수를 하는 방법이다.
첫 번째는 실수를 숨기지 않는 것이다.
타인에게 숨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지는 것이다. 실수를 외면하는 순간, 그 실수는 왜곡된다. 왜곡된 실수는 분석될 수 없고, 분석되지 않은 경험은 축적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반복한다.
두 번째는 실수란 걸 과정 중에 알게 되더라도 그 실수를 끝까지 완수하는 것이다.
과정 중에 실수라고 판단됐을 때 그걸 멈춰버린다면 가장 값비싼 데이터를 버리게 된다. 또 그것이 실수가 아닐지 모른다. 끝에 가서는 그 실수가 정답이었을지 모른다. 우린 실수를 끝까지 완전히 수행하고 그것을 기록하여야 한다.
결국 잘 실패하는 법이란, 실패를 제거하는 기술이 아니라 실패를 다루는 기술이다. 숨기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며,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 이 세 가지가 결합될 때 실패는 더 이상 반대편에 있는 적이 아니라, 다음 선택을 정교하게 만드는 재료가 된다.
그리고 여기서 처음으로, ‘발전’이라는 단어는 방향을 바꾼다. 더 이상 성공과 실패를 오가는 직선이 아니라, 실패를 중심으로 확장되는 구조로.
그때 비로소, 발전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된다.
강호동은 강심장을 녹화할 적에 녹화가 좋지 않았을 때 출연자 대기실에서 등을 돌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많이 배웠데이~”
많이 배웠데이 세상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