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영화를 찍는 사람이었다 (2화)
나는 한때 영화를 찍는 사람이었다 (2화)
해방촌으로 향하는 항해
해방촌으로 향하는 항해
남의 불행을 구경하는 것만큼 짜릿한 건 없다. 예컨대, 부동산 앱을 켜고 타인의 누추한 방들을 훔쳐보는 일 같은 것.
부동산 어플리케이션 속의 방들은 기괴하다. 광각 렌즈로 늘려놓은 원룸의 바닥은 운동장처럼 넓어 보이지만, 싱클레어는 안다. 그건 실제보다 더 커 보이려 애쓰는, 칼리가리 박사도 기겁하는 공간이라는 걸. 예전에는 영화의 스틸컷들을 저장하며 미장센을 고민했으나, 이제는 보증금과 월세의 숫자를 조합하며 내 삶의 견적을 낸다.
싱클레어는 그 사진들 속에서 자꾸만 결함을 찾으려 애쓴다. 벽지는 바꿔주는지, 수압의 세기 같은 것들. 하지만 마음은 결국 그 집들의 이름에서 멈춘다. ‘용산행복빌라’. 행복이라는 단어는 참 이상하다. 정말 행복한 사람들은 자기 집 이름을 행복빌라라고 짓지 않았을 터인데. 그건 행복하지 못한 자들이 매일 아침 문을 열 때마다 스스로에게 거는 가벼운 주문 같은 것이다.
싱클레어가 살고 있는 대학동 고시촌은 주문조차 허락되지 않는 동네다. 밤이 되어도 불이 꺼지지 않지만, 그 빛들은 무언가를 밝히기보다 서로를 감시하고 억누르는 것에 가깝다. 한 층에 원룸이 일곱 개씩 다닥다닥 붙은 건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방의 기침 소리와 새벽 3시 알람 소리를 내 것처럼 들으며 살아야 하는 곳. 이곳의 방들은 인간의 규격에 맞춰 적재해 둔 관 같다. 반지하 창문으로는 늘 누군가의 발목만 지나간다. 비가 오는 날이면 세상이 조금 더 아래로 내려앉는 기분이 들고, 사람들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자꾸만 밖으로 나돈다.
싱클레어도 그중 하나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날이면, 그는 대왕고래함 안에 앉아 편의점 왕뚜껑을 먹는다. 차 안에서 라면을 먹다가, 문득 자신이 내셔널지오그래픽 속 심해 연구원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스물일곱. 언제나 사표 1발 장전. 전세대출 계산 중. 대왕고래함 탑승자. 생각해보면 꽤 웃긴 인생이다.
골목에는 늘 싸우는 커플도 있다. 서울대생 같고, 둘 다 동남아 사람이다. 그들은 거의 매일 소리 지른다. 서로의 뺨을 때리기도 하는데, 신기하게도 꼭 한 대씩 번갈아 때린다. “짝.” “아악!” “짝.” “아악!” 가끔은 그 리듬이 너무 정확해서, 싱클레어는 저게 싸움인지 어떤 정교한 힙합 비트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금방이라도 저 기괴한 박자 위로 절박한 베트남어 랩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둘 중 한 명이 울면서 골목 끝까지 뛰어간다. 꼭 살아 있는 사람들 같다. 그들이 사라진 뒤 골목은 조용해졌지만, 싱클레어는 그 적막이 더 무섭다. 왠지 자신도 오래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 저 커플처럼 서로를 할퀴다 흔적 없이 증발할 것만 같다.
그래서 글을 쓰기 위해 고른 곳이 해방촌이다. 싱클레어는 단어가 가지는 힘을 믿는 편이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등줄기에 난 여드름 같은 동네. 그곳에 가면 왠지 바닷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고, 해방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남산타워를 보며 살고 싶다. 별 이유는 없다. 그냥 영화감독 같잖아. 싱클레어는 그 생각을 하다 혼자 웃는다.
하지만 해방에는 비용이 따른다. 싱클레어는 처음으로 전세대출 한도와 예상 이자를 계산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져 휴대폰을 덮을 때도 있다. “이걸 내가 갚는다고?”
해방촌으로 집을 보러 가는 날, 싱클레어는 거울 속의 자신을 검열한다. 너무 만만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까칠해 보이지도 않는 표정. 그는 영화 현장에서 밥을 먹으며 익힌 그 특유의 방어적인 눈빛을 장착한다. 이미 몇 번의 사기를 당하며 배운 값비싼 교훈이다. 육지는 다정함보다 속임수로 가득하고, 해방촌이라고 예외는 아닐 터다. 그는 중개인을 만나기 전, 이미 휴대폰으로 등기부등본을 훑는다. 부동산 앱 속의 광각 사진에 속아 넘어가기엔 그는 너무 많은 걸 겪었다.
해방촌 골목 108계단 앞에 섰을 때, 싱클레어는 잠깐 숨을 고른다. 백팔(108). 번뇌의 숫자. 한때는 저 계단을 한 칸 한 칸 올라가며 고통을 증명하고 싶었던 때도 있다. 뭔가 영화처럼,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다 정상에서 남산타워를 바라보는 장면 같은 것. 싱클레어는 계단을 잠깐 올려다본다.
삑-
망설임 없이 경사형 승강기 버튼을 누른다. “아, 됐다…” 문이 열리자 그는 자연스럽게 몸을 싣는다. 효율적으로 2-1막 시작을 편집한 상승이다. 승강기가 올라가는 동안, 싱클레어는 유리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중개인을 따라 도착한 용산행복빌라는 창밖으로 남산타워가 보인다. “방 마음에 드시죠? 가계약금부터 넣으셔야 안 뺏겨요.” 중개인의 부추김에도 싱클레어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미리 준비해둔 특약 사항들을 문자로 보낸다. ‘전세대출 불가 시, 보증보험 불가 시 계약금 반환 조건’. 집주인의 확답을 문자로 받아내고 캡처까지 마친 뒤에야, 그는 은행 앱을 켠다.
송금 완료. 싱클레어는 한참 그 화면만 바라본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전세사기 당하면 어떡하지?” 영화감독 흉내는 끝까지 거창하게 했지만, 결국 자신도 전세사기를 두려워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이제 7월 말이면 그는 정말 대학동 고시촌을 떠난다.
남의 불행을 구경하는 것만큼 짜릿한 건 없다. 예컨대, 부동산 앱을 켜고 타인의 누추한 방들을 훔쳐보는 일 같은 것.
부동산 어플리케이션 속의 방들은 기괴하다. 광각 렌즈로 늘려놓은 원룸의 바닥은 운동장처럼 넓어 보이지만, 싱클레어는 안다. 그건 실제보다 더 커 보이려 애쓰는, 칼리가리 박사도 기겁하는 공간이라는 걸. 예전에는 영화의 스틸컷들을 저장하며 미장센을 고민했으나, 이제는 보증금과 월세의 숫자를 조합하며 내 삶의 견적을 낸다.
싱클레어는 그 사진들 속에서 자꾸만 결함을 찾으려 애쓴다. 벽지는 바꿔주는지, 수압의 세기 같은 것들. 하지만 마음은 결국 그 집들의 이름에서 멈춘다. ‘용산행복빌라’. 행복이라는 단어는 참 이상하다. 정말 행복한 사람들은 자기 집 이름을 행복빌라라고 짓지 않았을 터인데. 그건 행복하지 못한 자들이 매일 아침 문을 열 때마다 스스로에게 거는 가벼운 주문 같은 것이다.
싱클레어가 살고 있는 대학동 고시촌은 주문조차 허락되지 않는 동네다. 밤이 되어도 불이 꺼지지 않지만, 그 빛들은 무언가를 밝히기보다 서로를 감시하고 억누르는 것에 가깝다. 한 층에 원룸이 일곱 개씩 다닥다닥 붙은 건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방의 기침 소리와 새벽 3시 알람 소리를 내 것처럼 들으며 살아야 하는 곳. 이곳의 방들은 인간의 규격에 맞춰 적재해 둔 관 같다. 반지하 창문으로는 늘 누군가의 발목만 지나간다. 비가 오는 날이면 세상이 조금 더 아래로 내려앉는 기분이 들고, 사람들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자꾸만 밖으로 나돈다.
싱클레어도 그중 하나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기 싫은 날이면, 그는 대왕고래함 안에 앉아 편의점 왕뚜껑을 먹는다. 차 안에서 라면을 먹다가, 문득 자신이 내셔널지오그래픽 속 심해 연구원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스물일곱. 언제나 사표 1발 장전. 전세대출 계산 중. 대왕고래함 탑승자. 생각해보면 꽤 웃긴 인생이다.
골목에는 늘 싸우는 커플도 있다. 서울대생 같고, 둘 다 동남아 사람이다. 그들은 거의 매일 소리 지른다. 서로의 뺨을 때리기도 하는데, 신기하게도 꼭 한 대씩 번갈아 때린다. “짝.” “아악!” “짝.” “아악!” 가끔은 그 리듬이 너무 정확해서, 싱클레어는 저게 싸움인지 어떤 정교한 힙합 비트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금방이라도 저 기괴한 박자 위로 절박한 베트남어 랩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둘 중 한 명이 울면서 골목 끝까지 뛰어간다. 꼭 살아 있는 사람들 같다. 그들이 사라진 뒤 골목은 조용해졌지만, 싱클레어는 그 적막이 더 무섭다. 왠지 자신도 오래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 저 커플처럼 서로를 할퀴다 흔적 없이 증발할 것만 같다.
그래서 글을 쓰기 위해 고른 곳이 해방촌이다. 싱클레어는 단어가 가지는 힘을 믿는 편이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등줄기에 난 여드름 같은 동네. 그곳에 가면 왠지 바닷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고, 해방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남산타워를 보며 살고 싶다. 별 이유는 없다. 그냥 영화감독 같잖아. 싱클레어는 그 생각을 하다 혼자 웃는다.
하지만 해방에는 비용이 따른다. 싱클레어는 처음으로 전세대출 한도와 예상 이자를 계산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져 휴대폰을 덮을 때도 있다. “이걸 내가 갚는다고?”
해방촌으로 집을 보러 가는 날, 싱클레어는 거울 속의 자신을 검열한다. 너무 만만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너무 까칠해 보이지도 않는 표정. 그는 영화 현장에서 밥을 먹으며 익힌 그 특유의 방어적인 눈빛을 장착한다. 이미 몇 번의 사기를 당하며 배운 값비싼 교훈이다. 육지는 다정함보다 속임수로 가득하고, 해방촌이라고 예외는 아닐 터다. 그는 중개인을 만나기 전, 이미 휴대폰으로 등기부등본을 훑는다. 부동산 앱 속의 광각 사진에 속아 넘어가기엔 그는 너무 많은 걸 겪었다.
해방촌 골목 108계단 앞에 섰을 때, 싱클레어는 잠깐 숨을 고른다. 백팔(108). 번뇌의 숫자. 한때는 저 계단을 한 칸 한 칸 올라가며 고통을 증명하고 싶었던 때도 있다. 뭔가 영화처럼,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다 정상에서 남산타워를 바라보는 장면 같은 것. 싱클레어는 계단을 잠깐 올려다본다.
삑-
망설임 없이 경사형 승강기 버튼을 누른다. “아, 됐다…” 문이 열리자 그는 자연스럽게 몸을 싣는다. 효율적으로 2-1막 시작을 편집한 상승이다. 승강기가 올라가는 동안, 싱클레어는 유리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중개인을 따라 도착한 용산행복빌라는 창밖으로 남산타워가 보인다. “방 마음에 드시죠? 가계약금부터 넣으셔야 안 뺏겨요.” 중개인의 부추김에도 싱클레어는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미리 준비해둔 특약 사항들을 문자로 보낸다. ‘전세대출 불가 시, 보증보험 불가 시 계약금 반환 조건’. 집주인의 확답을 문자로 받아내고 캡처까지 마친 뒤에야, 그는 은행 앱을 켠다.
송금 완료. 싱클레어는 한참 그 화면만 바라본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전세사기 당하면 어떡하지?” 영화감독 흉내는 끝까지 거창하게 했지만, 결국 자신도 전세사기를 두려워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이제 7월 말이면 그는 정말 대학동 고시촌을 떠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