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2층 버스에 올라탔던 외국에서의 어느 날, 옥섭 감독님은 매니큐어 냄새를 풍기고 있는 한 여자를 보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너무 싫었는데 그 사람을 내 영화 속 캐릭터라고 생각하니 너무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어요.” 서울 체크인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이옥섭 구교환 감독님의 말씀이다.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온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맘속에 그 말은 아주 단단히, 자리 잡아있다.
나에게도 매니큐어 냄새를 풍기는 여자처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싫어했던, 닉네임 ‘안경이’. 살 끝 하나 닿는 것이 미치도록 싫어서, 그 친구가 오면 돌아갔고, 친한 친구를 만나면 뒷담화를 했다. 그럼, 친구는 물었다. 왜 그렇게 싫어하냐고, 나는 안경이의 모든 것들 중에서, 친구 사귀는 방법을 가장 싫어했다.
유행하는 물건들을 사와, 아이들에게 뿌리고 그 속에서의 잠깐 인기를 누리는 방법. 나는 그 애의 모습을 도무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안 걸던 시비도 걸어보고, 왜 그렇게 하냐고 직접 물어보기도 하는 무례를 저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못되게 굴어봐도 진짜 못되게 굴지는 않으니까. 내가 그 앨 싫어하는 걸 내 친구를 제외하곤 아무도 몰랐고, 안경이 앞에 서면 올라오는 이상한 동질감에 나는 자연스레 입을 다물게 됐다. 그러니 안경이는 더더욱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내 속 시끄러움만 계속될 뿐이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나는 안경이와 함께 졸업사진을 찍는 조가 되었다. 견딜 수 없이 싫었던 시간이 가고 졸업하는 마당에 잘 지내자 싶었던 나는 그때서야 안경이와 반 분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안경이에게 물건을 받았던 아이들은 저들끼리 모여 사진 컨셉을 정하고 있었고 그 신나는 분위기 속에서 시무룩해 보이는 그 애를 보았다. 안경이도 섭섭해 하긴 했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알고 일부러 빠져주는 것 같았다.
한 발을 뒤로 빼고 “난 괜찮아 너희끼리 해”라며 언제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는 외로운 안경이가 보였을 때, 그 순간 나는 나를 봤다. 카메라 뒤에 숨으며 사진 찍어줄게 라고 말했던 중학교 시절의 나. 안경이의 모습이 싫었던 건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싫어하고 있는 것은 안경이가 아니라 나였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면 상대방에게서 내 모습을 찾으려 들었다. 그럼 이해되지 않았던 상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해 되며 싫은 마음이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그쯤 나는 영화과 입시를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최애 영화를 만났다. 이경미 감독님의 <미쓰 홍당무>.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는 단연 양미숙 캐릭터였다. 같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을 주지만, 관객에게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것이 엄청난 힘이라고 생각했다.
양미숙 캐릭터에게서 나와 비슷한 모습을 정말 많이 발견했다. 시끄럽게 떠들고 주변 사람 욕을 하며 스스로의 부족한 모습을 가리려고 버둥대는 모습이 특히나 그랬다. 평소에 너무도 싫어했던 내 모습을, 영화 속에 담겨있는 양미숙 캐릭터를 보며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좋았고, 캐릭터를 사랑함과 동시에 나의 찌질한 모습도 점차 사랑할 수 있게 된 것도 너무나도 신기했다.
누군가 미우면 자기 영화 속 캐릭터로 만들어서, 사랑해 버리고 만다는 옥섭 교환 감독님의 말씀처럼 상상의 세계를 만드는 일은 정말로 흥미로운 것 같다. 싫었던 모습을 캐릭터를 통해 재발견할 수 있게 되고, 영화라는 포멧을 통해 보여줌으로서 사건을 객관화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러 번 연습해도 여전히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싫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제 나는 안경이가 싫어서 틱틱댔을 때의 나로 남지 않기 위해 그 모습을 텍스트화한다. 입으로 중얼중얼 최면도 건다. 나는 내가 귀엽다.. 귀엽다 귀엽다.. 나는 00이가 사랑스럽다 사랑스럽다.. 사랑스럽다…
멋진 2층 버스에 올라탔던 외국에서의 어느 날, 옥섭 감독님은 매니큐어 냄새를 풍기고 있는 한 여자를 보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너무 싫었는데 그 사람을 내 영화 속 캐릭터라고 생각하니 너무 사랑스러워지기 시작했어요.” 서울 체크인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던 이옥섭 구교환 감독님의 말씀이다.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온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맘속에 그 말은 아주 단단히, 자리 잡아있다.
나에게도 매니큐어 냄새를 풍기는 여자처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싫어했던, 닉네임 ‘안경이’. 살 끝 하나 닿는 것이 미치도록 싫어서, 그 친구가 오면 돌아갔고, 친한 친구를 만나면 뒷담화를 했다. 그럼, 친구는 물었다. 왜 그렇게 싫어하냐고, 나는 안경이의 모든 것들 중에서, 친구 사귀는 방법을 가장 싫어했다.
유행하는 물건들을 사와, 아이들에게 뿌리고 그 속에서의 잠깐 인기를 누리는 방법. 나는 그 애의 모습을 도무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안 걸던 시비도 걸어보고, 왜 그렇게 하냐고 직접 물어보기도 하는 무례를 저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못되게 굴어봐도 진짜 못되게 굴지는 않으니까. 내가 그 앨 싫어하는 걸 내 친구를 제외하곤 아무도 몰랐고, 안경이 앞에 서면 올라오는 이상한 동질감에 나는 자연스레 입을 다물게 됐다. 그러니 안경이는 더더욱 알 길이 없었다. 그저 내 속 시끄러움만 계속될 뿐이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나는 안경이와 함께 졸업사진을 찍는 조가 되었다. 견딜 수 없이 싫었던 시간이 가고 졸업하는 마당에 잘 지내자 싶었던 나는 그때서야 안경이와 반 분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안경이에게 물건을 받았던 아이들은 저들끼리 모여 사진 컨셉을 정하고 있었고 그 신나는 분위기 속에서 시무룩해 보이는 그 애를 보았다. 안경이도 섭섭해 하긴 했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알고 일부러 빠져주는 것 같았다.
한 발을 뒤로 빼고 “난 괜찮아 너희끼리 해”라며 언제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하는 외로운 안경이가 보였을 때, 그 순간 나는 나를 봤다. 카메라 뒤에 숨으며 사진 찍어줄게 라고 말했던 중학교 시절의 나. 안경이의 모습이 싫었던 건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싫어하고 있는 것은 안경이가 아니라 나였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면 상대방에게서 내 모습을 찾으려 들었다. 그럼 이해되지 않았던 상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해 되며 싫은 마음이 잦아들었기 때문이다.
그쯤 나는 영화과 입시를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최애 영화를 만났다. 이경미 감독님의 <미쓰 홍당무>.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캐릭터는 단연 양미숙 캐릭터였다. 같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을 주지만, 관객에게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것이 엄청난 힘이라고 생각했다.
양미숙 캐릭터에게서 나와 비슷한 모습을 정말 많이 발견했다. 시끄럽게 떠들고 주변 사람 욕을 하며 스스로의 부족한 모습을 가리려고 버둥대는 모습이 특히나 그랬다. 평소에 너무도 싫어했던 내 모습을, 영화 속에 담겨있는 양미숙 캐릭터를 보며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좋았고, 캐릭터를 사랑함과 동시에 나의 찌질한 모습도 점차 사랑할 수 있게 된 것도 너무나도 신기했다.
누군가 미우면 자기 영화 속 캐릭터로 만들어서, 사랑해 버리고 만다는 옥섭 교환 감독님의 말씀처럼 상상의 세계를 만드는 일은 정말로 흥미로운 것 같다. 싫었던 모습을 캐릭터를 통해 재발견할 수 있게 되고, 영화라는 포멧을 통해 보여줌으로서 사건을 객관화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여러 번 연습해도 여전히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싫어지는 순간이 있다. 이제 나는 안경이가 싫어서 틱틱댔을 때의 나로 남지 않기 위해 그 모습을 텍스트화한다. 입으로 중얼중얼 최면도 건다. 나는 내가 귀엽다.. 귀엽다 귀엽다.. 나는 00이가 사랑스럽다 사랑스럽다.. 사랑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