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미 가득 메워진 점심시간, 초등학교 5학년 새이는 오늘도 교실에 남아 장애 학생 도하를 지킨다. 새이는 밖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지만, 이내 도하를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도하의 약을 챙겨주고, 쏟은 물병을 다시 세워주고, 흥건한 물을 닦아내는 일은 이제 그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과이다.
영화 <새이와 도하>는 책임감 있게 도하를 돌보던 지킴이 새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벌어진 사고에서 출발한다. 사건의 시작점에서 선생님은 보호자 역할을 다하지 못한 새이를 꾸중한다. 이로 인해 새이는 억울함을 품게 되고 도하에게 점점 미운 마음을 갖는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도하도 억울한 건 마찬가지다. 혼자 미끄러져 넘어졌을 뿐인데 새이를 탓하는 선생님의 말과 행동은 가시가 되어 마음에 박힌다. 두 사람의 관계는 학교가 맺어준 틀 안에서 길을 잃는다.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도하가 야속한 새이와, 차라리 사과하지 않기를 바라는 도하.
이들은 과연 외부적으로 강요된 책임감을 넘어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될 수 있을까?
영화는 학생이 다치고, 학교가 그 책임을 학생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서사는 <한공주>, <죄 많은 소녀> 등 많은 독립 영화에서 봐온 냉담한 사회의 풍경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사회의 냉담한 풍경을 마냥 냉담하게만 담아내지 않는다. 대신 두 아이의 화해의 과정에 포커스를 맞춤으로써 냉담한 사회 속 서로의 진심을 맛보는 순간을 포착해낸다.
포착의 과정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상황을 극적으로 연출하지 않는 카메라 앵글이다. 이는 사건이 발생하는 장면 속 카메라를 분석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먼저 사건이 시작될 무렵 새이를 담은 앵글을 살펴보자. “1인 1역도 다 끝났잖아”, “나가서 축구하자”라는 말을 듣는 새이의 표정 컷은 친구들의 뒤통수가 함께 걸리는 조금 와이드한 바스트 컷이다. 새이의 마음에 “도하를 두고 나갈까?” 하는 흔들림이 생기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의 말이나 표정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다. 또 아이들의 뒤통수가 걸리는 프레이밍 작업을 통해 새이의 표정보다 상황에 시선이 가게 만든다. 이러한 카메라 앵글은 도하를 담는 장면에서도 볼 수 있다.
새이가 놀러 나간 사이, 잠에서 막 깬 도하는 물을 뜨러 몸을 일으킨다. 워커에 몸을 올리고, 물통을 들고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이때 카메라는 계속해서 풀샷을 유지한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을 자아내며 “도하는 과연 어디로 갈까?” 하고 궁금해하며 바라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한 아이가 보일 뿐 새이의 부재를 불편해하는 모습은 일절 느껴지지 않는다. 감독은 일상의 한 풍경을 담듯 자연스럽게 화면들을 연결한다. 감독은 이러한 일상적이되 객관적인 카메라 앵글을 통해 영화 속 사건이 도하의 장애가 아니었다면 지극히 일상적으로 흘러갔을 장면이었음을 보여준다.
극 중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새이는 도하와의 사건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도 받고, 도하와 자존심 싸움도 하며 사과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가득 품게 된다. 하지만 선생님과 부모님이 무서운 어린이로선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에서 보았듯, 아이들 사이의 관계는 어른들만큼이나 치열하지만 어른들 앞에선 너무나도 작아지는 것이 아이들의 위치이다. 결국 새이는 선생님의 강요로 사과 편지를 쓴다.

새이는 어디에 이야기해도 이해받을 수 없는 사건을 겪었다. ‘내가 자리를 지키지 않아 장애가 있는 친구가 다쳐버린 사건’ 말이다. 편지를 쓰고 돌아가는 길, 새이는 터덜터덜 걸어가 교실 뒷문을 연다. 그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도하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새이는 그 모습을 보고 빠르게 가방을 챙겨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다.
운동장 한복판, “새이야” 하고 부르는 도하의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를 들은 새이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천천히 걸음을 멈춘다. 새이 앞에 발걸음을 멈춘 도하는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네 잘못 아니야’라고 말하는 도하를 보며 우리는 선생님의 강요는 어떤 의미도 없었음을 저절로 깨닫는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때, 감독과 카메라는 이전보다 훨씬 타이트한 샷을 선택한다. 두 아이를 둘러싼 상황을 건조하게 담아내던 그동안의 촬영이, 아이들의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따뜻한 시선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러한 촬영의 변화는 도하의 사과처럼 부담스럽지 않게 관객 마음에 스며들어 긴 여운을 남긴다.

<새이와 도하>는 해가 중천에 떠 더운 기운으로 가득한 낮부터 노을이 질 때까지의 시간을 담은 영화이다. 새이와 도하, 두 사람의 관계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햇빛의 색깔처럼 점점 어둑해지지만 한편으론 더 따스하게 물들어간다. 그 빛의 변화를 따라온 관객도 자신의 모르는 사이에 두 아이와 한 뼘 더 가까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영화의 끝, 탁 트인 앵글 속 상처받은 두 아이가 나란히 걸어간다. 끝내 형식적일 수 있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비로소 깊은 유대로 나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매미 가득 메워진 점심시간, 초등학교 5학년 새이는 오늘도 교실에 남아 장애 학생 도하를 지킨다. 새이는 밖에서 축구하는 아이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끼지만, 이내 도하를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도하의 약을 챙겨주고, 쏟은 물병을 다시 세워주고, 흥건한 물을 닦아내는 일은 이제 그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과이다.
영화 <새이와 도하>는 책임감 있게 도하를 돌보던 지킴이 새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벌어진 사고에서 출발한다. 사건의 시작점에서 선생님은 보호자 역할을 다하지 못한 새이를 꾸중한다. 이로 인해 새이는 억울함을 품게 되고 도하에게 점점 미운 마음을 갖는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도하도 억울한 건 마찬가지다. 혼자 미끄러져 넘어졌을 뿐인데 새이를 탓하는 선생님의 말과 행동은 가시가 되어 마음에 박힌다. 두 사람의 관계는 학교가 맺어준 틀 안에서 길을 잃는다.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 도하가 야속한 새이와, 차라리 사과하지 않기를 바라는 도하.
이들은 과연 외부적으로 강요된 책임감을 넘어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될 수 있을까?
영화는 학생이 다치고, 학교가 그 책임을 학생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서사는 <한공주>, <죄 많은 소녀> 등 많은 독립 영화에서 봐온 냉담한 사회의 풍경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사회의 냉담한 풍경을 마냥 냉담하게만 담아내지 않는다. 대신 두 아이의 화해의 과정에 포커스를 맞춤으로써 냉담한 사회 속 서로의 진심을 맛보는 순간을 포착해낸다.
포착의 과정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상황을 극적으로 연출하지 않는 카메라 앵글이다. 이는 사건이 발생하는 장면 속 카메라를 분석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먼저 사건이 시작될 무렵 새이를 담은 앵글을 살펴보자. “1인 1역도 다 끝났잖아”, “나가서 축구하자”라는 말을 듣는 새이의 표정 컷은 친구들의 뒤통수가 함께 걸리는 조금 와이드한 바스트 컷이다. 새이의 마음에 “도하를 두고 나갈까?” 하는 흔들림이 생기는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의 말이나 표정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다. 또 아이들의 뒤통수가 걸리는 프레이밍 작업을 통해 새이의 표정보다 상황에 시선이 가게 만든다. 이러한 카메라 앵글은 도하를 담는 장면에서도 볼 수 있다.
새이가 놀러 나간 사이, 잠에서 막 깬 도하는 물을 뜨러 몸을 일으킨다. 워커에 몸을 올리고, 물통을 들고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이때 카메라는 계속해서 풀샷을 유지한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을 자아내며 “도하는 과연 어디로 갈까?” 하고 궁금해하며 바라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욕구에 충실한 한 아이가 보일 뿐 새이의 부재를 불편해하는 모습은 일절 느껴지지 않는다. 감독은 일상의 한 풍경을 담듯 자연스럽게 화면들을 연결한다. 감독은 이러한 일상적이되 객관적인 카메라 앵글을 통해 영화 속 사건이 도하의 장애가 아니었다면 지극히 일상적으로 흘러갔을 장면이었음을 보여준다.
극 중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새이는 도하와의 사건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도 받고, 도하와 자존심 싸움도 하며 사과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가득 품게 된다. 하지만 선생님과 부모님이 무서운 어린이로선 어쩔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들>에서 보았듯, 아이들 사이의 관계는 어른들만큼이나 치열하지만 어른들 앞에선 너무나도 작아지는 것이 아이들의 위치이다. 결국 새이는 선생님의 강요로 사과 편지를 쓴다.

새이는 어디에 이야기해도 이해받을 수 없는 사건을 겪었다. ‘내가 자리를 지키지 않아 장애가 있는 친구가 다쳐버린 사건’ 말이다. 편지를 쓰고 돌아가는 길, 새이는 터덜터덜 걸어가 교실 뒷문을 연다. 그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도하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새이는 그 모습을 보고 빠르게 가방을 챙겨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다.
운동장 한복판, “새이야” 하고 부르는 도하의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를 들은 새이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천천히 걸음을 멈춘다. 새이 앞에 발걸음을 멈춘 도하는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네 잘못 아니야’라고 말하는 도하를 보며 우리는 선생님의 강요는 어떤 의미도 없었음을 저절로 깨닫는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때, 감독과 카메라는 이전보다 훨씬 타이트한 샷을 선택한다. 두 아이를 둘러싼 상황을 건조하게 담아내던 그동안의 촬영이, 아이들의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따뜻한 시선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러한 촬영의 변화는 도하의 사과처럼 부담스럽지 않게 관객 마음에 스며들어 긴 여운을 남긴다.

<새이와 도하>는 해가 중천에 떠 더운 기운으로 가득한 낮부터 노을이 질 때까지의 시간을 담은 영화이다. 새이와 도하, 두 사람의 관계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햇빛의 색깔처럼 점점 어둑해지지만 한편으론 더 따스하게 물들어간다. 그 빛의 변화를 따라온 관객도 자신의 모르는 사이에 두 아이와 한 뼘 더 가까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영화의 끝, 탁 트인 앵글 속 상처받은 두 아이가 나란히 걸어간다. 끝내 형식적일 수 있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비로소 깊은 유대로 나아갈 준비를 하게 된다.
Related Post
마을을 누비는 보리의 하루, 그녀의 눈높이로 바라본 세상 그리고 뜻밖의 판타지 할아버지의 제삿날, 7살 소녀 보리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콩나물을 사 오려 한다. 생애 처음, 집 밖으로 홀로 떠나는 여행! 과연 보리는 혼자 무사히 콩나물을 사 올 수 있을까?
마을을 누비는 보리의 하루, 그녀의 눈높이로 바라본 세상 그리고 뜻밖의 판타지 할아버지의 제삿날, 7살 소녀 보리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콩나물을 사 오려 한다. 생애 처음, 집 밖으로 홀로 떠나는 여행! 과연 보리는 혼자 무사히 콩나물을 사 올 수 있을까?



